행성 공전 이용하는 또다른 방법: 중력 도움

지금의 항공우주공학 기술로는 수백 kg 또는 그 이상의 장비를 지닌 우주선을 로켓 추진만으로 토성 또는 그보다 멀리 있는 천체에 보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런데 우주선이 항해 중에 추진체를 쓰지 않고도 우주선의 속도를 추가로 높이는 마술 같은 방법이 있다. 공전하는 행성 근처를 지나가면서 추가적인 속도를 얻는 방법이다.  ‘중력 도움’ , ‘스윙바이’, ‘슬링샷’ 등으로 불린다. 과거의 보이저 1·2호뿐 아니라, 명왕성을 탐사한 뉴호라이즌스 호까지 지구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천체를 탐사하는 탐사선의 속도를 높이는 데 ‘중력도움’ 항법은 결정적 역할을 했다.

태양이나 태양에 가장 가까운 행성인 수성을 탐사할 때는 오히려 우주선의 빠른 속도가 문제가 된다. 방향 전환이나 감속을 해야 하는데  우주선의 빠른 속도 때문에 이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태양탐사선 ‘파커’와 수성탐사선 ‘베피콜롬보’는 이 문제를 중력도움 항법으로 해결한다. 때로는 우주선의 속도를 높이거나 줄이고, 방향을 바꾸는 데 사용하는 중력도움 항법의  원리가 무엇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지구에서 발사한 우주선은 초속 29.8km의 속도를 덤으로 얻는다.
태양은 태양계 전체 질량의 99.8% 이상을 차지한다. 지구 질량보다 33만배 크고, 태양에서 가장 큰 행성인 목성의 질량보다도 1000배 이상 크다. 태양이 끌어당기는 중력도 매우 커서, 태양 표면에서의 중력은 지구 표면 중력의 28배에 이른다. 이런 태양의 중력이 구심력으로 작용해 태양계 나머지 천체들이 태양 주위를 돈다. ‘공전’이라고 부르는 천체의 움직임이다. 태양에서 약 1억 5천만km 떨어져 있는 지구는 태양 주위를 1년에 1바퀴씩 돈다. 이로부터 계산한 지구의 평균 공전속도는 초속 29.8km(시속 10만7천km) 정도다. 대륙 사이를 비행하는 대형 여객기의 속도보다 100배 이상 빠른 속도다.

지구위에 가만히 서있는 사람 본인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지구위에 있는 것은 모두 공전하는 지구와 함께 같이 움직인다. 지구가 공전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위치, 예를 들면 태양에서 본다고 가정하면 지구에 가만히 서있는 사람도 지구와 같이움직인다. 그 속도는 초속 29.8km(시속 10만7천km)로 대륙 사이를 비행하는 대형 여객기의 속도보다 100배 이상 빠른 속도다.[1] 지구에서 발사하는 우주선도 마찬가지로 지구와 같이 움직이므로, 지구에서 발사한다는 자체만으로 우주선은 지구의 공전속도를 덤으로 얻는다.[2] 지구 공전 방향으로 멀어지는 우주선의 경우, 지구에서 보는 우주선의 속도는 우주선이 지구에서 멀어지는 속도지만, 태양에서 보면 우주선의 속도는 지구의 공전속도가 더해진 속도다.[3]

공항에 있는 ‘자동길’이라고 부르는 움직이는 길을 생각해보자. 자동길 위에 가만히 서있은 사람이 옆에서 똑같이 서있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은 상대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동길 위에 있지않고 자동길 밖의 건물 바닥에 서있는 사람이 보면, 이 사람은 자동길이 움직이는 속도로 움직인다. 이번에는 자동길위에서 자동길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걷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자동길 위에 서있는 사람에게 이 사람은 걷는 속도로 움직인다. 하지만 자동길 밖에 서있는 사람이 보기에 이 사람은 걷는 속도에 자동길이 움직이는 속도까지 더해져 훨씬 빠르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자동길에서 걷는 사람은 자동길이 움직이는 속도를 덤으로 얻는 셈이다. 자동길에 서있는 사람을 지구에 서있는 사람, 자동길에서 걷는 사람을 지구를 떠나는 우주선, 건물 바닥에 서있는 사람을 태양에서 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우주선이 지구의 공전속도를 덤으로 얻는 것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림 1. 상대속도를 이해하는데 좋은 예인 자동길(움직이는 길). 맨위 사진: 인천공항의 자동길, 사진 밑의 첫번째 그림: 움직이는 자동길에 서있는 사람 본인을 자동길 위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있지만, 건물 바닥에 서있는 사람이 보기에는 이사람을 자동길이 움직이는 속도와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 가운데 그림: 자동길에서 자동길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걷는 사람의 경우 자동길에 서있는 사람이 보면 이 사람은 걷는 속도로 움직이지만, 건물 바닥에 서있는 사람이 보면 이 사람은 걷는 속도에 자동길이 움직이는 속도가 더해져 더 빨리 움직인다. 맨아래 그림: 만약에 자동길이 움직이는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걷 사람을 건물 바닥에 서있는 사람이 보면 오히려 더 느리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그림 일부 출처: openclipart.org)

태양중력 탈출속도: 태양의 중력을 완전히 벗어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속도
속도가 빠를수록 우주선은 움직이는 관성만으로 태양의 중력을 뿌리치고 태양에서 더 멀리 멀어질 수 있다. 공을 위로 던질 때 빠르게 던질수록 지구의 중력을 뿌리치고 더 높이 올라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우주선의 속도가 충분히 크면 태양의 중력을 완전히 뿌리치고 태양계를 벗어날 수도 있다. 이렇게 태양의 중력을 완전히 뿌리칠 수 있는 최소한의 속도를 태양 중력 ‘탈출속도’라고 부른다. 태양의 중력을 벗어나야하는 만큼, 태양 중력 ‘탈출속도’는 태양의 위치에서 본 속도로 따져야 한다.

태양에서 지구만큼 떨어진 거리에서는 초속 42.1km가 태양 중력 탈출속도다. 지구의 공전 속도보다 $\\sqrt{2}(\\simeq 1.414)$배 더 큰 속도다.[4] 태양에서 1억 5천만 km 떨어진 곳에서 공을 초속 42.1km로 던지면, 그 공은 움직이는 관성만으로 태양의 중력을 완전히 벗어나 명왕성을 넘어 아주 멀리 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지구에서 출발한 우주선은 이미 지구 공전속도를 덤으로 얻고 가기 때문에, 태양계를 벗어나기 위해 추가로 얻어야할 속도는 그만큼 줄어든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구에서 발사된 우주선이 태양 중력 탈출속도와 공전속도의 차이인 초속 12.3km(초속 42.1km – 초속 29.8km)만으로는 태양계를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지구의 중력도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출발해 태양계를 벗어나려면, 우주선은 ‘제 3 우주속도’라고 불리는 초속 16.7km로 지구에서 멀어져야 한다.[5] 그런데 ‘제 3 우주속도’는 지구에서 출발한 우주선이 태양계를 벗어나기 위한 최소한의 속도이기 떄문에, 이 속도로 시작해서 태양계의 언저리나 그 너머의 아주 먼 곳에 가려면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이보다 더 빠른 속도가 필요하다. 로켓 추진만으로 이런 속도를 내기는 어렵고, 항해 도중에 중력도움 항법으로 속도를 높여 부족한 속도를 채운다.

중력도움 항법으로 우주선의 속도를 높이는 원리
중력도움 항법으로 속도를 높이려면, 항해도중에 행성에 다가갔다 멀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6] 그 원리를 이해하는데는 다음 두 가지 사실이 중요하다. 첫째는 행성은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어떤 위치에서 보느냐에 따라 우주선의 속도는 다르다는 것이다. 비록 ‘중력도움 항법’이라는 이름에는 행성의 공전이라는 내용이 겉으로 드러나있지 않지만, 중력도움 항법으로 우주선의 속도를 조절하는데는 행성의 중력뿐만 아니라 행성의 공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태양의 위치에서 우주선의 속도를 따지는 것만으로 중력도움 항법이 어떻게 작동하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우주선의 움직임과 행성의 움직임에 행성이 우주선을 끌어 당기는 중력이 개입하는 좀 복합한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성의 위치에서 보는 우주선의 속도를 먼저 따지고 나중에 행성의 공전속도를 영향을 헤아리면, 비교적 어렵지 않게 태양에서 보는 우주선의 속도 변화를 이해할 수 있다.

먼저 행성의 위치에서 보는 우주선의 속도를 따져 보자. 이 기준에서는 우주선이 행성에 다가갈 때나 멀어질 때나 행성에서 떨어진 거리만 같다면 우주선 속도의 크기는 같다. 이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적용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행성에서 떨어진 거리가 같으면 중력에 의한 위치에너지가 같다. 이 상황에서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를 더한 전체 에너지가 보존되려면 운동에너지가 같아야하고 결국 속도의 크기가 같아야 한다. 다가가거나 멀어짐에 따라 방향만 달라질 뿐이다.

그림 2. 행성의 중심에서 본다고 가정했을때 행성에 다가왔다가 멀어지는 우주선의 속도. 행성에서의 거리가 같으면 우주선이 움직이는 방향만 다를뿐 속도의 크기는 같다.

 

태양의 위치에서 보는 우주선의 속도는, 행성에서 보는 우주선의 속도에 행성의 공전속도가 더해진 속도다. 만약에 우주선이 행성의 공전방향으로 멀어진다면 우주선의 속도 크기에 행성의 공전 속도의 크기를 더해주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주선이 움직이는 방향이 행성의 공전방향과 같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속도 크기만 더하는 것이 아닌 방향까지 고려하는 ‘벡터 더하기’ 방식으로 더한다. 행성의 위치에서 볼때 행성에서 떨어진 거리만 같으면 다가갈때나 멀어질때 크기가 같았던 우주선의 속도가, 태양의 위치에서 볼때는 행성의 공전속도가 더해지면서 많은 경우 그 크기가 달라진다. 그림 1에서 처럼 움직이는 자동길에 가만히 앉아있는 사람에게는 자동길에서 똑같은 속도로 걷는 사람이 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속도의 크기는 같다. 하지만 건물 바닥에  사람이 볼때는 자동길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람이 반대방향으로 걷는 사람보다 더 빠른 것과 비교할 수 있다.

중력도움 항법을 속도를 높이는 목적으로 사용하려면, 우주선의 속도가 행성에 접근할때보다 멀어질때 속도가 커져야한다. 이때 우주선의 속도는 태양 위치에서본 속도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행성이 공전하는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접근해서 행성이 공전하는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면 그림1에서와 같이 자동길 밖에 서있는 사람이 자동길에서 걷는 사람을 볼때, 자동길이 움직이는 반대방향으로 걷는 사람은 느리게 움직이지만 이 사람이 방향을 바꿔 자동길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걸으면 빠르게 움직이는 상황과 비슷하다. 자동길위에서 걷는 사람은 똑같은 속도로 방향만 바꿔서 걷지만 자동길 밖에서 보면 자동길 방향으로 걷는 사람이 훨씬 빠르다. 이런 이상적인 중력도움 항법을 시행하면 행성 공전속도의 두배에 해당하는 속도를 추가로 얻는다.

실제로 우주선이 항해할때는 행성이 공전하는 반대방향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그림 3에서와 같이 행성이 공전하는 방향과 많이 다르게 접근해서 비슷하게 멀어진다. 이 경우에도 우주선의 속도는 행성에 다가갈때보다 멀어질때가 더 크다. 이러한 방식으로 목성에 접근해 중력도움 항법을 시행하면 높일 수 있는 우주선의 속도는 초속 10km 이상이다. 로켓 추진만으로 이 만큼 속도를 높이려면 상당한 로켓연료가 필요하고, 이를 우주에 올려놓기위한 발사체 크기도 훨씬 커져야한다. 중력도움 항법을 시행하면, 그만큼 발사체 크기와 연료를 줄일 수 있어 훨씬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다.

그림 3. 중력도움 항법으로 속도를 높이는 방법: (맨 위 그림) 목성을 지나갈 때 보이저 1호의 궤적 (출처: NASA JPL). (가운데 그림) 중력도움 항법으로 속도를 높일 때 행성의 위치에서 본 전형적인 우주선의 궤적. 우주선이 행성에 접근하는 방향은 행성이 공전하는 방향과 다르고, 우주선이 멀어지는 방향은 행성이 공전하는 방향과 비슷하다. (맨 아래 그림) 행성의 위치에서 본 우주선의 속도(왼쪽의 검은색 화살표)는 다가갈 때나 멀어질 때나 같다. 반면 태양의 위치에서 본 우주선의 속도(오른쪽의 핑크색 화살표)는 행성의 공전속도가 더해져서 멀어질 때가 더 크다.  두 경우 모두 행성에서의 거리가 같을 때의 속도를 비교했을 경우다. 공전속도를 더할 때는 단순 크기만 더하는 것이 아닌, 방향까지 고려한 벡터 더하기를 한다.

 

행성이 공전하는 방향과 비슷하게 멀어지기 위해서는 우주선이 행성에 접근하는 거리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에 행성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우주선이 행성 중력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아서 우주선의 날아가는 방향이 너무 많이 꺾일 수 있다. 이런 경우 오히려 우주선의 속도가 더 느려지거나 아예 행성의 중력에 갇혀 행성 주위를 영원히 도는 인공위성이 될 수도 있다. 반면 너무 멀리 접근하면 행성 중력의 영향을 너무 적게 받아서 우주선이 방향이 충분히 꺾이지 않을 수 있다. 그만큼 우주선 속도를 높이는 효과도 작아진다.

공전하는 행성의 중력을 이용해 우주선의 속도를 높이는 중력도움 항법은 1961년에 제트추진연구소(JPL: Jet Propulsion Laboratory)에 인턴으로 일하던 미노비치(Michael A. Minovitch)가 찾아낸 것으로 알려졌다.[7] 1972년 3월3일에 발사된 파이오니어 10호(Pioneer 10)가 중력도움 항법으로 태양계를 벗어날 수 있는 속도에 도달한 최초의 탐사선이다. 발사한 지 1년 9개월이 지난 1973년 12월에 목성에 접근하는 중력도움 항법으로 초속 12km이상의 속도를 추가로 높였다. 목성 너머의 우주를 탐사하는 다른 우주선들도 모두 이 항법을 이용해 속도를 높였다.[8]  파이오니어 11호, 보이저 1호와 2호, 토성탐사선 ‘카시니-하위헌스’, 명왕성을 탐사한 ‘뉴 호라이즌스’가 대표적인 경우들이다.

 


카시니-하위헌스(Cassini-Huygens)호: 토성 탐사선인 ‘카시니’와 토성의 위성 타이탄 착륙선인 ‘하위헌스’로 구성된 ‘카시니-하위헌스’호는 탐사선 질량만 2.5톤에 이르러 보이저 1호나 2호보다 3배 이상 컸다. 당시 로켓기술로는 이만한 질량의 탐사선을 토성까지 직접 보낼 만한 속력을 내기 어려웠다. 대신 ‘카시니-하위헌스’호는 중력도움 항법을 네번이나 시행해 토성까지 갈 수 있는 속도로 높였다. 처음 두번은 금성에, 세번째는 지구에, 그리고 마지막은 목성에 가까이 다가가는 중력도움 항법이었다.

1997년 10월 15일에 발사된 카시니-하위헌스 호는 네번의 중력도움 항법을 시행하면서 7년 가까이를 날아가 2004년 7월에 토성주위를 도는 공전궤도에 진입했다. 2005년 1월에는  ‘하위헌스’ 착륙선이 분리되어 타이탄에 진입한다. 남은 ‘카시니’ 토성 탐사선은 2017년까지 토성과 토성의 위성들을 탐사하다가, 2017년 9월 11일에 토성의 가장 큰 달인 ‘타이탄’을 근접비행하면서 비행 방향을 바꿔 4일 후인 9월 15일 토성에 충돌해 최후를 맞았다.

그림 설명: 카시니-하위헌스호의 비행 궤적 : 금성에서 두번, 지구에서 한번 목성에서 한번, 총 네번의 중력도움 항법으로 탐사선의 속도를 높혀서, 2.5톤에 이르는 탐사선이 토성에 도달할 수 있었다. (원본 그림 출처: NASA)


 

수성 탐사선 매리너10호의 중력도움 항법
지구에서 목성까지의 거리는 가장 짧을 때도 6억 km에 이른다. 반면 태양에 가장 가까운 행성인 수성까지의 거리는 가장 짧을 때 7천7백만 km이고 가장 멀 때는 2억 2천만 km다. 수성이 목성보다 훨씬 지구에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첫 수성 탐사와 첫 목성 탐사 시기는 비슷하다. 처음으로 목성에 가까이 간 우주선인  파이오니어 10호는 1972년 3월 3일에 발사되어 1973년 12월 4일에 목성에 가장 가까이 간 반면, 최초의 수성 탐사선인 매리너 10호(Mariner 10)는 1973년 11월 3일에 발사되어 1974년 3월 29일에 수성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다.

수성을 탐사하려면 수성을 향해 날아가야 한다. 그런데 지구의 공전속도를 덤으로 얻은 우주선의 빠른 속도가 이를 어렵게 만든다. 똑같이 방향을 바꾸더라도 우주선이 빠를수록 더 큰 속도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로켓 추진으로 지구 공전궤도 안쪽의 수성을 향해 가려고 해도 지구 공전방향으로 떠밀려 방향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 만들어진다. 배를 타고 노를 저어 물살이 빠른 강을 건널 때, 강가에 서 있는 사람이 보면 배는 빠른 물살에 떠밀려 강물의 흐름과 별 차이 없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

다행히 지구와 수성 사이에 있는 금성이 이 문제를 좀 더 쉽게 만든다. 금성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이고 공전궤도도 지구의 공전궤도에서 비교적 가까운 편이다. 금성을 향해가도록 방향을 바꾸는 것도 것도 상대적으로 쉽다. 매리너 10호 발사되기 12년 전인 1961년에 이미 매리너 2호 (Mariner 2)가 금성에 3만5천km까지 접근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금성에 가까이 접근하면 우주선은 금성의 중력에 끌린다. 다가가는 방향과 거리가 적절하면 우주선은 금성의 중력으로 금성 주위를 감아돌고 빠져나오면서 방향을 수성을 향하게 할 수 있다. 이렇게 행성의 중력을 이용해 우주선의 방향을 바꾸는 것도 중력도움 항법이다.

매리너 10호(Mariner 10)는 발사한 지 약 3개월 뒤인 1974년 2월 5일에 금성에 접근하는 중력도움 항법을 시행해 수성으로 향했다. 단순히 방향만 바꾼 것이 아니라 속도도 조절했다.[9] 그 결과로 태양 주위를 도는 공전궤도가 줄어들어, 매리너 10호는 금성궤도와 수성궤도를 걸치는 타원 모양의 궤도로 태양 주위를 176일에 한 바퀴씩 돌았다. 수성이 태양주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인 88일의 두배다. 매리너 10호가 수성에 접근한 다음 176일만에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다시 돌아오면, 그 사이 수성은 태양을 두 바퀴 돌고 돌아와 매리너 10호와 다시 만나는 것을 반복할 수 있었다. 1975년 3월 24일에 통신이 끊기기 전까지 매리너 10호는 세번에 걸쳐 수성에 가까이 접근해 탐사했고 그 결과를 지구로 송신했다. 이렇게 금성에 접근하는 중력도움 항법으로 수성에 주기적으로 접근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사람은 이탈리아 수학자이면서 엔지니어인 주세페 콜롬보(Giuseppe Colombo)였다. [10]2018년에 발사된 수성탐사선 ‘베피콜롬보’가 바로 그의 애칭이다.

그림 4. 금성에 접근하는 중력도움 항법으로 수성을 향해 날아간 매리너 10호의 궤적. 금성을 근접비행한 후 매리너 10호는 태양주기를 176일에 한 번씩 돌면서 수성을 반복적으로 만났다. 중력도움 항법으로 방향과 속도를 조절한 매리너10호의 공전주기가 수성의 공전주기의 두배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1970년대 초에 주세페 콜롬보(Giuseppe Colombo)가 제안했다.


보이저 1호와 2호의 마지막 단계 중력도움 항법: 1977년 9월 5일에 발사된 보이저 1호는 목성에 접근하는 중력도움 항법으로 속력을 높여, 지금은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보다 140배가 넘는 거리에서 더 멀어지고 있다. 속도는 아직도 초속 17km에 이른다. 그런데 보이저 1호가 토성에 접근해 마지막으로 시행한  중력도움 항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목성에 접근할 때와는 달리 보이저 1호는 토성의 아래쪽(남극)으로 접근했다. 토성의 중력에 이끌린 보이저 1호는 토성의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감아돌아 날아가면서 방향을 바꿨다. 중력도움 항법의 주목적이 방향을 바꾸는 것이었던 대표적인 경우다. 보이저 1호는 현재는 태양계 행성이 만드는 면과 약 35도의 각도를 이루면서 위쪽으로 멀어지고 있다. 현재 태양에서의 거리는 지구와 태양 사이 거리의 140배가 넘는다.

보이저 2호는 태양계 행성들이 만드는 면에 계속 머물면서 토성, 천왕성, 해왕성을 차례로 근접비행했다. 마지막 행성인 해왕성 근접비행 때는 해왕성의 중력을 이용해 태양계 아래쪽으로 방향을 바꿔, 현재 태양 아래방향 48도 각도로  날아가고 있다.

Planetary Voyage, Jet Propulsion Laboratory, https://voyager.jpl.nasa.gov/mission/science/planetary-voyage/

 

그림 설명:. 보이저 1호와 2호가 날아가는 방향. 태양계 행성들이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이는 쪽이 위쪽이라고 할 때 보이저 1호는 현재 위쪽 35도 각도로 날아가고 있고, 보이저 2호는 아래쪽 48도 각도로 날아가고 있다. (이미지 출처: NASA JPL)


속도를 줄이는 중력도움 항법
매리너 10호는 176일에 한 번씩 수성 가까이 지나치기는 했어도, 수성 근처에 계속 머물면서 관측할 수는 없었다. 가까이에서 지속적으로 수성을 관측하려면 수성 주위를 도는 수성의 인공위성이 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최초로 수성의 인공위성이 된 수성탐사선은 메신저(Messenger)호로 매리너 10호보다 무려 30여년이 지난 후인 2004년 8월 3일에 발사됐다. 메신저호가 실제 수성의 인공위성이 된 때는 발사후 6년 7개월이 지난 2011년 3월 18일이었다.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린 이유는 여러 번의 중력도움 항법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수성과 태양 사이의 거리는 4천6백만km에서 7천만km까지 변화가 비교적 큰 편이다. 그 중간거리를 기준으로 잡으면 수성은 공전속도는 초속 47.8km정도다. 반면 지구 공전궤도에서 지구 공전속도인 초속 29.8km로 날아가는 우주선이 방향만 바꿔서 수성을 향한다고 하면, 이 우주선이 수성에 접근할 때의 속도는 초속 61km에 이른다.[11] 높은 곳에서 떨어뜨린 돌멩이가 지구중력으로 아래로 떨어지면서 속도가 커지듯이, 우주선도 태양의 중력으로 태양에 더 가까운 수성으로 떨어지면서 속도가 더 커진다. 줄어든 위치에너지만큼 운동에너지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수성의 공전속도와 비교하면 초속 13km이상 더 빠른데, 이 속도 차이는 수성의 인공위성이 되기에는 너무 크다.

수성은 태양계에서 가장 작고 가벼운 행성이다. 태양계 행성들 중에 중력도 가장 작아서, 수성의 중력을 완전히 벗어나는 데 필요한 속도인 중력 탈출속도는 초속 4.2km에 불과하다. 탐사선이 수성보다 초속 4.2km만 빨라도 수성의 중력을 완전히 벗어나기 때문에 수성의 인공위성이 될 수 없다.[12] 이 속도마저도 수성에 매우 가깝게 접근하는 것을 가정하는 경우다. 실제 상황에서는 탐사선의 속도를 최대한 수성의 공전속도에 가깝게 줄여야 하고 수성에 접근하는 거리와 방향도 적절해야 수성의 중력에 갇혀 수성의 인공위성이 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중력도움 항법을 시행하면 로켓 추진체의 역추진을 최소화하면서 탐사선의 속도를 줄이고 방향도 바꿀 수 있다.

중력도움 항법으로 우주선의 속도를 줄이려면 우주선이 행성의 공전방향과 비슷하게 다가가고, 공전방향과 다르게 멀어져야 한다. 우주선 속도를 높이는 중력도움 항법과는 반대 방식이다. 이 경우도 태양의 중심 위치에서 보는 우주선의 속도도 행성의 중심 위치에서 본 우주선의 속도에 행성의 공전속도가 ‘벡터 더하기’ 방식으로 더해진다. 그 결과 그림 6에서와 같이 우주선의 속도는 행성에 다가갈 때보다 행성에서 멀어질 때 더 작다. 단순히 행성 가까이 지나치는 것만으로 우주선의 속도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최초의 수성탐사선인 매리너 10호도 금성에 접근하는 중력도움 항법으로 탐사선의 속도를 시속 37.0 km 에서 초속 32.3km까지 줄였다.

그림 5. 중력도움 항법으로 속도를 줄이는 전형적인 방법: (윗 그림) 우주선이 행성에 접근하는 방향은 행성이 공전하는 방향과 비슷하고, 우주선이 멀어지는 방향은 행성이 공전하는 방향과 달라야 한다. (아랫 그림) 행성 위치에서 본 우주선의 속도(왼쪽)는 다가갈 때나 멀어질 때나 같다. 반면 태양 위치에서 본 우주선의 속도(오른쪽)는 행성의 공전속도가 더해져서(벡터 더하기) 다가갈 때 더 크다. 두 경우 모두 행성에서의 거리가 같을 때의 속도를 비교했을 경우다.

그런데 금성에 접근하는 중력도움 항법을 한 번만 실행해서는 우주선의 궤도를 수성의 공전궤도와 비슷하게 줄일 수 없다. 한쪽에서는 수성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지만 태양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돌아오면 금성의 궤도로 되돌아오는 타원 모양의 궤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수성의 공전궤도와 비슷하게 하려면 금성 쪽으로 멀어진 한 쪽의 궤도도 줄여야 한다. 이 경우에는 수성에 접근하는 중력도움 항법을 시행해 우주선의 속도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반복함에 따라 우주선의 궤도는 수성의 공전궤도에 점점 더 가까워진다.

메신저호는 지구에 한 번, 금성에 두 번, 그리고 수성에 세 번, 이렇게 총 여섯 번의 중력도움 항법을 시행했다. 중력도움 항법을 할 때마다 탐사선 방향은 조금씩 바뀌고 속도도 줄어들었다. 수성에 접근하는 세 번의 중력도움을 통해 탐사선의 궤도는 수성의 공전궤도와 거의 비슷하게 줄어들었다. 발사후 수성의 인공위성이 되기까지 총 7년 7개월 동안 메신저호는 중력도움 항법 사이에 추진체를 이용한 소폭 궤도수정도 여러번 시행했다. 중력도움 항법을 잘 할 수 있도록 궤도를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이었다.

2018년 10월 20일에 발사된 수성탐사선 ‘베피콜롬보’호도 메신저호와 유사한 중력도움 항법 과정을 시행할 예정이다.[13] ‘메신저’호의 7년 7개월보다는 약간 더 짧은 7년 1개월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베피콜롬보’가 시행할 중력도움 항법의 횟수는 총 아홉번이다. 구체적으로는 지구에 한 번, 금성에 두 번, 수성에 여섯 번 접근한다. 베피콜롬보호도 메신저호와 마찬가지로 중력도움 항법을 할 때마다 방향을 바꾸고 속도를 줄여서 탐사선 궤도를 수성의 공전궤도와 가깝게 줄여 나간다. 중력도움 항법 사이에 보조적으로 사용하는 추진체로 이온 추진체(ion thruster)를 사용하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14] 베피콜롬보호는 수성의 인공위성이 됨과 동시에 탑재된 두개의 수성 궤도선이 분리되어 서로 다른 거리에서 수성 주위를 돌면서 탐사활동을 벌인다.[15]

태양탐사선 파커(Parker)호도 6년 동안 모두 일곱번에 걸쳐 금성에 근접하는 중력도움 항법을 시행한다.[16] 파커호는 행성의 인공위성이 아닌 태양 주위를 도는 ‘인공행성’이 된다. 반복되는 중력도움 항법을 통해 탐사선의 속도를 줄이고 방향을 바꿔 태양에 다가가서, 태양에서 6백16만 km 거리까지 접근하는 것이 목표다. 태양의 지름보다 4.4배 정도밖에 안되는 거리다. 금성을 이용하는 중력도움 항법만 시행하기 때문에 최종 궤도에 이르러서도 태양에서 가장 멀때는 금성의 공전궤도에 이르는 타원 모양의 공전궤도를 돌게 된다.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88일로 계획되어 있다.

정리해 보면 중력도움은 로켓 추진 없이 우주선의 속도를 높이거나 줄이고 방향을 바꾸는 항법으로 우주탐사에 두루두루 쓰인다. 특히 우주선 속도 조절에는 행성의 중력뿐만 아니라 행성의 공전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림 7에서 볼 수 있듯이, 우주선의 속도를 높이려면 공전 방향과 다르게 행성에 접근하고 공전방향과 비슷하게 멀어져야 하고,  반대로 우주선의 속도를 줄이려면 공전 방향과 비슷하게 행성에 접근해서 공전 방향과 다르게 멀어져야 한다. 중력도움 항법을 여러번 시행하는 경우에는 목표한 천체까지 도달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추진체로 할 일의 대부분을 중력도움항법으로 대신 하는 만큼 발사체의 크기를 줄일 수 있고 로켓 연료도 절약할 수 있는 장점은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한국도 최근 자체 개발한 누리호 시험 발사체를 성공적으로 발사했고, 기상 및 우주 관측 위성인 천리안 2A호도 자체 개발해 성공적으로 적도 상공 3만6천km의 정지궤도에 성공적으로 올렸다. 앞으로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개발이 뒤따르면, 달뿐만 아니라 다른 행성이나 소행성 또는 혜성에 탐사선을 보낼 수 있으리라 본다. 자체 개발한 발사체로 우주 탐사선을 보내기 위해  중력도움 항법을 계획해 계산하고 실행하는 때도 곧 오길 기대해 본다.

그림 6. 중력도움 항법으로 우주선 속도를 높이거나, 줄이거나, 방향만 바꾸는 방법: 탐사선의 속도를 높이려면 행성의 공전방향과 다르게 접근해서 비슷하게 멀어져야 한다. 반대로 탐사선의 속도를 줄이려면  행성의 공전방향과 비슷하게 접근해서 다르게 멀어져야 한다.

 

 

[1] 태양도 은하계 중심을 기준으로 보면 초속 230km 움직인다. 태양계안에서 주로 탐사활동을 하는 우리로서는 태양의 위치를 기준으로 한 속도로 계산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하다.
[2] 지구 자전으로 인해 움직임도 있다. 적도 지역에서는 자전속도가 초속 0.46km (=460m) 정도다. 공전속도에 비해  공전속도보다 1.55% 에 불과하지만, 아주 무시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3] 지구공전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지구에서 멀어지는 우주선의 경우, 태양의 위치를 기준으로 본 우주선의 속도는 지구공전속도에서 우주선이 지구에서 멀어지는 속도를 뺀 속도다.
[4] 공전궤도가 동그라미 모양이라는 가정을 했을 경우에 그렇다. 동그라미 모양에서 많이 벗어난 타원 모양이면 다른 계산이 필요하다.
[5] “우주탐사선, 행성공전 이용한 비행속도 증가 어떻게?” 윤복원, 한겨레 사이언스 온, 2015년 10월 14일
[6] 반드시 행성에 다가갈 필요는 없다. 위성의 중력을 이용해 중력도움 항법을 시행하기도 한다.
[7] The maths that made Voyager possible, Christopher Riley and Dallas Campbell, BBC 4, October 23, 2012. https://www.bbc.com/news/science-environment-20033940
[8] “Gravitational assist in celestial mechanics—a tutorial”, James A. Van Allen, Am. J. Phys. 71, 448 (2003)
[9] Mariner Venus/Mercury 1973 Status Bulletin 1974년 2월 6일, Jet Propulsion Laboratory, http://ser.sese.asu.edu/M10/BULLETINS/bul-18.pdf
[10] Giuseppe ‘Bepi’ Colombo: Grandfather of the Fly-by, History of ESA in Space, ESA, https://www.esa.int/About_Us/Welcome_to_ESA/ESA_history/Giuseppe_Bepi_Colombo_Grandfather_of_the_fly-by
[11] 수성의 중력에 끌려 증가한 속도는 고려하지 않은 속도다.
[12] 우주선의 속도가 수성의 공전 속도보다 초속 4.2km 느려도 수성의 인공위성이 될 수 없다.
[13] BepiColombo Factsheet. European Space Agency. http://www.esa.int/Our_Activities/Space_Science/BepiColombo/BepiColombo_factsheet
[14] BepiColombo Electric Propulsion Thruster and High Power Electronics Coupling Test Performances, 33rd International Electric Propulsion Conference. 6–10 October 2013. Washington, D.C. IEPC-2013-133, S.D. Clark, et al. (2013).
[15] Mission Operations – Getting to Mercury, European Space Agency. http://sci.esa.int/bepicolombo/48871-getting-to-mercury/
[16] Parker Solar Probe, NASA, http://parkersolarprobe.jhuapl.edu/index.php